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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도 자 료 |
2012. 6. 20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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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
6.25납북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 김석규 (Tel. 02- 2020- 2511) 외교안보정책관실 통일안보과장 신인섭 (Tel. 02- 2100- 2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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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수) 12:00 이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배 포 |
공보지원비서관실 정책홍보행정관 류형석 (Tel. 02- 2100- 2108) |
김황식 총리 주재, 6‧25납북진상규명위원회 및 납북자 가족 초청 행사 개최 - 6.25전쟁 납북자 351명 추가 결정 - |
ㅇ 김황식 국무총리는 오늘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및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 제6차 회의를 주재하고 6·25전쟁 납북자 351명을 추가로 결정하였다.
- 이로서 제3차 전체회의(2011년 8월) 부터 제5차 전체회의(2012. 4월)를 통해 정부가 발표한 392명의 납북자를 포함하면 총 743명이 공식적으로 6·25전쟁 납북자로 인정되었다.
ㅇ 이번 회의에서는 각 시‧도실무위원회(위원장: 시ㆍ도지사)의 사실조사와 소위원회 심의를 마친 386명을 심사대상으로 하여 이중 351명은 납북자 결정으로, 11명은 납북자 비결정으로, 24명은 납북확인 판단불능으로 결정하였다.
ㅇ 납북자로 결정된 351명 중에는 △국회의원 김교현, 권태희, 박영래, 박철규 등 정치인 10명 △백운선(당시 동아일보 사진부장), 이종승(당시 서울신문사 정치부 기자) 등 언론인 6명 △최동욱(당시 서울고등법원 판사), 하진문(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 등 법조인 6명 △김근호(당시 동양기선 전무이사/ 전 배재학당 이사장) △유기태(당시 대한노총 위원장)등이 포함
- 1 -
되어 있다.
- 특히, 백운선 동아일보 사진부장은 이길용 체육기자와 함께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1950. 7.20 마포 공덕동 자택에서 북한군에 의해 납치된 사례이다.
- 김근호 동양기선 전무이사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큰 200톤 규모의 배를 운영하며, 선교사들이 떠나버린 배재학당을 운영하기 위해 철원인근의 26만평의 땅을 기부하는 등 교육계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 1950.7.26 종로 가회동 자택에서 북한군에 의해 납치된 사례이다.
ㅇ 위원회 전체회의에 이어 김황식 국무총리는 6ㆍ25전쟁납북인사 가족대표 등 30여명을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하여 오찬간담회를 개최하였다.
- 오찬간담회에서 김황식 국무총리는 그동안 강제납북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납북인사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 앞으로, 정부는 납북자 등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남북간 인도적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강조하였다.
ㅇ 위원회는 앞으로 2013년 12월까지 주소지관할 시군구청 및 재외공관을 통해 납북피해신고를 접수받아 이를 처리하는 한편, 납북피해신고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이고 다양한 홍보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 참고자료 : 납북자 결정 기본 통계자료 및 위원회 현황
- 2 -
【별첨1】
납북자 결정 351건의 기본 통계 자료(제6차 위원회) |
□ 거주지별 현황
구분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울산 |
경기 |
강원 |
충북 |
충남 |
전북 |
전남 |
경북 |
경남 |
제주 |
황해 |
계 (351) |
156 |
- |
- |
9 |
- |
- |
- |
75 |
23 |
32 |
16 |
4 |
7 |
23 |
5 |
- |
1 |
비율 (%) |
44.4 |
- |
- |
2.6 |
- |
- |
- |
21.4 |
6.6 |
9.1 |
4.6 |
1.1 |
2.0 |
6.6 |
1.4 |
- |
0.3 |
□ 연령별 현황
구분 |
10대 |
20대 |
30대 |
40대 |
50대 |
60대 이상 |
계 (351) |
61 |
112 |
100 |
48 |
23 |
7 |
비율 (%) |
17.4 |
31.9 |
28.5 |
13.7 |
6.6 |
2.0 |
※ 성별 : 남성 342명, 여성 9명
- 3 -
□ 직업별 현황
구분 |
정 치 인 |
일 반 공 무 원 |
경 찰 ‧ 교 도 관 |
종 교 인 |
법 조 인 |
언 론 인 |
문 화 ‧ 예 술 인 |
교 사 ‧ 교 수 |
보 건 ‧ 의 료 |
농 어 업 |
상 공 업 |
회 사 원 |
학 생 |
노 동 자 |
기 타 |
계 (351) |
10 |
34 |
17 |
3 |
6 |
6 |
- |
8 |
4 |
115 |
67 |
23 |
32 |
1 |
25 |
비율 (%) |
2.8 |
9.7 |
4.8 |
0.9 |
1.7 |
1.7 |
- |
2.3 |
1.1 |
32.8 |
19.1 |
6.6 |
9.1 |
0.3 |
7.1 |
- 4 -
납북자 결정 743건의 기본 통계 자료(6월 기준 누계) |
□ 거주지별 현황
구분 (명)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울산 |
경기 |
강원 |
충북 |
충남 |
전북 |
전남 |
경북 |
경남 |
제주 |
황해 |
제3차 (55) |
30 |
- |
- |
2 |
- |
- |
- |
2 |
7 |
7 |
1 |
- |
- |
6 |
- |
- |
- |
제4차 (217) |
87 |
- |
- |
10 |
- |
- |
- |
48 |
34 |
11 |
3 |
- |
- |
23 |
1 |
- |
- |
제5차 (120) |
37 |
1 |
- |
2 |
- |
1 |
- |
32 |
19 |
16 |
4 |
- |
1 |
5 |
1 |
- |
1 |
제6차 (351) |
156 |
- |
- |
9 |
- |
- |
- |
75 |
23 |
32 |
16 |
4 |
7 |
23 |
5 |
- |
1 |
계 (743) |
310 |
1 |
- |
23 |
- |
1 |
- |
157 |
83 |
66 |
24 |
4 |
8 |
57 |
7 |
- |
2 |
비율 (%) |
41.7 |
0.1 |
- |
3.1 |
- |
0.1 |
0 |
21.1 |
11.2 |
8.9 |
3.2 |
0.5 |
1.1 |
7.7 |
0.9 |
- |
0.3 |
□ 연령별 현황
구분(명) |
10대 |
20대 |
30대 |
40대 |
50대 |
60대 이상 |
제3차(55) |
9 |
13 |
15 |
8 |
9 |
1 |
제4차(217) |
31 |
64 |
66 |
35 |
17 |
4 |
제5차(120) |
18 |
46 |
32 |
17 |
5 |
2 |
제6차(351) |
61 |
112 |
100 |
48 |
23 |
7 |
계(743) |
119 |
235 |
213 |
108 |
54 |
14 |
비율(%) |
16.0 |
31.6 |
28.7 |
14.5 |
7.3 |
1.9 |
※ 성별 : 남성 733명, 여성 10명
□ 직업별 현황
구분 |
정 치 인 |
일반 공무 원 |
경찰 ‧ 교도 관 |
종 교 인 |
법 조 인 |
언 론 인 |
문화 ‧ 예술 인 |
교사 ‧ 교수 |
보건 ‧ 의료 |
농 어 업 |
상 공 업 |
회 사 원 |
학 생 |
노 동 자 |
기 타 |
제3차 (55) |
8 |
3 |
2 |
- |
1 |
1 |
- |
- |
- |
13 |
11 |
4 |
5 |
1 |
6 |
제4차 (217) |
16 |
20 |
15 |
2 |
5 |
5 |
- |
7 |
3 |
82 |
24 |
11 |
12 |
6 |
9 |
제5차 (120) |
- |
6 |
7 |
- |
5 |
- |
1 |
3 |
3 |
56 |
14 |
4 |
6 |
2 |
13 |
제6차 (351) |
10 |
34 |
17 |
3 |
6 |
6 |
- |
8 |
4 |
115 |
67 |
23 |
32 |
1 |
25 |
계 (743) |
34 |
63 |
41 |
5 |
17 |
12 |
1 |
18 |
10 |
266 |
116 |
42 |
55 |
10 |
53 |
비율 (%) |
4.6 |
8.5 |
5.5 |
0.7 |
2.3 |
1.6 |
0.1 |
2.4 |
1.3 |
35.8 |
15.6 |
5.7 |
7.4 |
1.3 |
7.1 |
- 5 -
【별첨2】
- 6 -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 및 사무국 일반 현황 |
1 |
설치 목적 |
o 6·25전쟁 중 발생한 납북사건들의 진상규명과 납북자 및 납북자가족들의 피해규명, 명예회복을 통해 인권회복과 국민화합 도모
2 |
설치 근거 및 존속 기한 |
o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4조 3항(‘10.3.26제정, 9.27 시행), 동법률시행령 제2조
o 존속기한 없음(단, 자료수집·분석기한은 동법률 제9조에 의거 위원회
구성 후 4년 이내(1년 이내, 최대 2회 연장 가능)
3 |
주요 기능 |
o 다음 사항을 심의·의결
① 6·25전쟁 중 납북사건 진상조사에 관한 사항
② 납북자 조사를 위한 국내외 관련 자료의 수집 및 분석
③ 납북자 및 납북자가족의 심사·결정
④ 납북자 및 납북자가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
⑤ 진상조사보고서 및 명부작성
⑥ 납북자의 생사확인 및 송환, 서신교환·가족상봉의 의견 및 건의에 관한 사항
⑦ 기념사업, 납북자가족 단체 등에 대한 재정지원 사항 등
4 |
위원회 구성 |
o 국무총리(위원장), 정부위원(통일부장관, 외교통상부장관, 국방부장관, 행정안전부장관, 경찰청장), 민간위원(9명)
5 |
사무국 구성 |
o 1국 2과(기획총괄과, 조사과) 24명으로 구성 (공무원 12명, 상근계약직 12명)
- 7 -
<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명단 >
위 원 |
현 직 |
비고 |
|
정부 위원 (6명) |
김 황 식 |
국무총리 |
위원장 |
김 성 환 |
외교통상부장관 |
||
류 우 익 |
통일부장관 |
주관 |
|
김 관 진 |
국방부장관 |
||
맹 형 규 |
행정안전부장관 |
||
김 기 용 |
경찰청장 |
||
민간 위원 (9명) |
김석우 |
o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원장 |
전문가 |
김평우 |
o 前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
유호열 |
o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
제성호 |
o 중앙대 법학대학원 교수 |
||
허만호 |
o 경북대 정외과 교수 |
||
정진석 |
o 한국외대 명예교수 |
||
이미일 |
o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
납북자 가족 |
|
이경찬 |
o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 |
||
최광석 |
o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 |
- 8 -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 활동 현황 |
1 |
납북피해신고 접수ㆍ처리 |
o ’11.1.3부터 전국 228개 시‧군‧구와 재외공관을 통해 납북피해신고 접수 개시
o ’12.5월말 기준 1,666건 신고접수(수도권+강원도 77.7%/ 국내 1,654건, 국외 12건)
2 |
다양한 신고안내 홍보 |
o TV, 라디오, 지하철 등 활용, 사무국 차원의 다양한 홍보활동 전개
o 입간판, 현수막 등 16개 시‧도별 실정에 맞는 홍보 협력
o 물망초 뱃지 달기 캠페인 등 납북인사가족단체 주요활동 지원을 통한 홍보
3 |
자료발굴 및 DB 구축 |
o 수집자료 분류‧정리(’11년말 기준, 총615건)
- 신문, 간행물, 신원기록 자료 등
o 납북피해신고‧심의‧결정상황 및 납북자 통합 DB 관리를 위한 「위원회통합관리시스템」구축‧시도실무위원회 연계 운영(’12.2)
4 |
6ㆍ25납북자가족단체 활동지원 |
o 美하원 ‘납북자 송환 결의안’ 채택(’11.12.13) 지원
o 납북인사가족단체에 보조금 1억원 지원, 전시납북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확산 도모
- 6‧25납북 사진전, 6‧25납북 길 따라 걷기 등 지원
- 납북민간인 송환 관련, 휴전회담 회의록 분석보고서 발간 등
- 9 -
5 |
향후계획 |
o 지속적인 홍보로 신고활성화 주력
o 납북피해 신고 건 적기 처리
o 국가기록원 등 국내기록전문기관 소장 기록 및 국외기록 조사‧수집 지속 및 수집 자료의 체계적 정리
o 전시납북피해 진상조사보고서 집필 착수
o 6‧25납북관련 명부 DB입력 및 통합관리시스템 고도화 추진
o 명예회복사업 방안 강구 등
/끝/
- 10 -
【별첨3】
납북자 결정 저명인사 5명의 상세자료 |
의안번호 |
납 북 자 납북자가족 |
비고(상세 내용) |
720 |
윤태경 윤창식 (아들) |
1909년 서울 출생. 배재학당 졸업. 교육위원회 장학지도 학무 담당 근무 후 국회 감찰위원회 정보관으로 근무. 1950년 9월 오전 7시경 서울 종로구 내자동 자택에서 내무서원들에게 납치되어 이후 소식 두절. |
623 |
신치호 신경순 (딸) |
1925년 황해도 출생. 일본 명치대학교 졸업, 육군본부, 통일처 근무 시 좌익사상범과 간첩을 조사, 육군형무소에 구속시키고, 공작원을 교육시켜 이북으로 보내는 일을 했음. 이후 신익희‧조병옥 보좌관으로 근무. 6‧25전쟁 발발 후 부하 직원들 중 간첩들이 대상자가 피신할 만한 곳을 감시, 1950년 7월경 대상자가 서울에서 숨어 다니던 중 용산구 자택 인근에서 인민군에 발각돼 동묘경찰서로 연행됨, 이후 소식 두절. |
745 |
이각의 이기정 (조카) |
1925년생, 경기도 출생. 경기도 양주군 장흥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6‧25전쟁이 나자 대상자의 부친만 남고 가족들과 함께 한강 방면으로 피난을 갔음. 그해 12월 부친이 걱정된다며 대상자가 고향인 장흥집으로 돌아왔다가 1951년 1월경 장흥면 자택에서 북한 측 기간원들에게 납치된 후 소식 두절됨. |
662 |
김근호 김영안 (딸) |
1907년 강화 출생. 배재고 졸업, 일제시기 인천에서 민족자본으로 운영된 동양기선(주) 전무이사로 근무, 배재학당 선교사들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사재를 기부하면서 배재학당 이사장을 겸했음. 6‧25전쟁 후 지방좌익들을 피해 인근 동료 집에 피신 중 1950년 7월 가족들이 걱정돼 종로구 가회동 집에 왔다가 내무서원에게 납치, 내무서로 연행된 후 소식 두절됨. |
641 |
이주신 이경찬 (아들) |
1910년 서울생. 서울대학교 졸업, 대상자는 해방 이전부터 검사로 근무, 해방 후에도 검찰에서 근무. 서울지방검찰청 부장 검사로 근무 중 6‧25전쟁 발발, 가족들을 인근 친척집에 피신시키고 본인도 피신 중 1950년 7월 종로 4가에서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됨. 연합신문 편집국 국장 배상화가 쓴 탈출기에 따르면, 당시 대상자가 음악인 김해송(가수 이난영의 남편), 문필가 박영애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청량리- 우이동- 한탄강을 경유해 납북된 것으로 추정됨. |
-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