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 -  2018.03.08. KIST


현장을 많이 다니는 편이지만, 오늘은 매우 각별합니다. 제가 여기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KIST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그 의미가 작아지지 않을 그런 존재입니다. 그 곳에 오게 돼서 몹시 감회가 깊습니다. 

2008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 해에 어떤 신문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년 동안의 성취 가운데 무엇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하는 질문입니다. 놀랍게도 가장 많은 응답이 ‘과학기술의 발달’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체육 발전’, 세 번째가 ‘경제성장’, 네 번째가 ‘정치 민주화’였습니다. 그 무렵이 김연아 선수가 세계 최고의 실력을 내보일 때였기 때문에 대중적인 감각으로는 ‘체육 발전’이 1등을 할 수도 있던 시기였는데, 놀랍게도 우리 국민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을 제일 자랑스러운 일로 꼽았습니다. 

바로 이 KIST는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입국(科學立國) 기술자립(技術自立)이라는 꿈에 따라 설립된 곳이고, 바로 그런 과학기술입국의 모태, 원점인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건국 이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바로 그 일이 KIST 이곳에서 이뤄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KIST 초기에는 수많은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 최형섭 초대 원장님 전시관을 지나왔습니다만, 사무실이 없어서 청계천 어물시장 주변에 은행 지점을 하나 얻어 사무실로 쓰던 시절, 연구 장비가 없어 군수품 폐자재를 고쳐 연구 장비로 쓰던 시절, 심지어 발전기가 없는데 폐 모터를 고쳐 발전기로 쓰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연구원에 하숙비를 주지 못해 

수위들 월급을 쪼개 연구원 하숙비로 보태주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역대 KIST의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외국에서 받던 좋은 대우를 모두 포기하고 조국을 위해 봉사하시겠다고 박봉을 견디시던 그런 분들의 땀과 노력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KIST의 연구 혼에 대해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나간 날에 자족할 형편이 못됩니다. 오늘 아침 다른 회의에서도 혁신의 중요성을 얘기했지만, 이제 혁신을 하지 않으면 현상 유지가 되는 시대가 아닌, 혁신하지 않으면 쇠퇴하는, 남들과 비슷하게 혁신해야 겨우 현상 유지가 되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농업 시대에는 혁신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비슷한 생활을 아들이 하고, 또 그 아들과 비슷한 생활을 손자가 하고 살아왔습니다만, 이제는 비슷한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쇠퇴하고 마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 때 우리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결국엔 과학기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우리 연구개발 예산은 사상 최대인 19조 7천억 원이 편성됐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운영 방식이 건설업 형인데도 사상 처음으로 R&D 예산이 SOC 예산보다 많아졌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돈을 쓰는 데 충분히 소기의 성과를 내느냐, 또 제대로 쓰느냐 하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특히 혁신을 하려면, 여러 가지 규제를 풀어 자유롭게 연구하게 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할텐데, 그걸 제대로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정부가 반성할 여지가 굉장히 많습니다. 

최형섭 초대원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KIST는 감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KIST에 와서 규제혁파에 대해 우리가 논의하는 원점이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를 아실 겁니다. 중국에서 원자폭탄을 만들고, 미사일, 인공위성을 만든 과학자가 전학상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분은 미국에서 연구하는 과학도였습니다. 그런데 조국인 중국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늘 관심을 갖고 조국의 소식을 늘 접했었는데, 그때 미국은 메카시 열풍이 불던 시기여서 중국 뉴스를 자꾸 보는 그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추방했습니다. 80여일의 항해 끝에 조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당 중앙으로부터 만찬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초청장에 적힌 번호를 보니 자기 자리가 없었고, 한참 기다리다 안내를 받았는데, 안내받은 자리가 모택동 수석 바로 옆자리였습니다. 거기서 모택동 수석이 전학상에게 특별한 신뢰를 내보이며 부탁했습니다. 거기서부터 그 분이 원자폭탄, 미사일, 인공위성을 만들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공산주의를 말살하겠다고 했던 메카시즘의 결과 사상 최강의 공산국가가 건설된 것입니다.

최형섭 박사님, 전학상의 사례는 연구자들이 뭘 원하는가 하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간섭하지 않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을 드렸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규제혁파를 논의하며, 바로 그런 옛 일을 함께 생각했으면 합니다. 많은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 몇 개 부처 차관님들이 와 계시는데, 즉석에서 답변을 드리고 그렇지 못한 것은 숙제로 안고 돌아가겠습니다.